2019. 03. 13.
천마산은 나의 식물 학교입니다. 서울 근교에 이만한 산이 없습니다. 식물에 빠진 이래 내가 즐겨 가는 산입니다. 언제 어디쯤 가면 뭘 만날 수 있는지 훤히 그려집니다. 내 블로그에는 천마산에서 모셔온 식물종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왜 이렇게 미세먼지가 극심할까요? 옴짝달싹 못하고 집 안에 처박혀 있자니 안달합니다. 다행히 내일 일기 예보에 미세먼지 좋음 수준이랍니다.
과연 오늘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남한산성이 훤히 내다보입니다. 북서풍에 미세먼지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꽃샘추위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혼자라도 가려는데 꽃동무가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혼자 가면 외롭다면서. 밖에 나가니 제법 바람끝이 매섭습니다. 난데 없이 구름이 몰려오더니 해를 덮어 버립니다. 잠실 광역버스터미널. 꽃동무가 먼저 와서 기다립니다. 호평동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호평역에 내려 천마산입구 가는 버스로 환승해 갑니다.
천마산 입구 임도 가장자리 양지 녘에 둥근털제비꽃이 먼저 얼굴은 내밉니다. 제비꽃 가족 중에서도 제일 먼저 피는 친구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온통 솜털이 보송보송합니다. 솜털은 겨우내 추위를 견디기 위한 방한복입니다. 외롭게 혼자서 겨울을 지낸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겠습니까! 이렇듯 여럿이 함께 뭉쳐 견딤에 겨울 혹한도 극복할 수 있었겠지요. 입술꽃잎에 보랏빛 줄이 선명합니다. 수정을 위해 곤충을 쉽게 유도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점현호색, 아직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일반 현호색과는 달리 꽃이 크고, 잎 표면 전체에 흰 반점이 많은 점이 특징입니다. 바로 이 천마산에서 표본을 채집하여 1987년 김윤식, 오병운 교수가 분류학회지에 처음 발표하여 출생 신고한 종입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 줌으로서 꽃이 되었습니다. 나는 15년 전 처음으로 여기 이곳에서 처음 만나서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이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었습니다.
팔현마을 쪽으로 내려가는데 아직은 봄이 멀어 보입니다. 골짜기엔 하얗게 쌓인 잔설이 보란듯이 버티고 있습니다. 너무 성급하다고 좀 더 기다리랍니다. 혹여 너도바람꽃조차 보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동행한 꽃동무에게 좀 면목이 없을 듯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4월 초순경에나 가야 얼레지도 올라오고, 복수초, 금괭이눈, 산자고,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중의무릇, 각시현호색, 달래, 등등 온갖 봄꽃의 향연이 펼쳐질 판입니다.
팔현저수지 발원지인 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어디쯤 가면 뭐가 있는지 눈을 감고도 훤하게 떠오릅니다. 거기쯤 가면 필시 너도바람꽃 피어 있을 거야! 그러면 그렇지! 너도바람꽃이 팝콘처럼 흩어져 피어 있습니다. 남이 바람꽃 비슷하다고 인정받아 '너도바람꽃'이 되었습니다. '반짝이는 별 모양 봄 꽃'이라 하여 학명이 'Eranthis stellata Maxim.'입니다. 자칭 바람꽃 닮았다고 안달하여 이름이 된 '나도바람꽃'은 같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지만 속이 전혀 다릅니다. 너도바람꽃은 키가 고작 5c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담으려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밤나무 아랜지 밤송이 껍질이 깔려 있습니다. 몇 군데 찔리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꽃의 상태가 좀 시원찮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려 냉해를 입었나 봅니다. 상태가 괜찮은 모델을 골라서 담았습니다.
앉은부채, 꽃싸개잎에 둘러싸인 육수꽃차례가 마치 부처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합니다. 잎과 꽃이 함께 있어서 모델이 그만입니다. 덩이뿌리를 한약재로 쓰지만 독초입니다. 배춧잎 같아 먹음직스런 연한 잎은 먹지 못합니다. 꽃에서 나는 야릇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벌레들이 기어들어가 수정합니다. 중국에서는 취숭(臭菘)이라 하고, 영어권에서는 스컹크가 풍기는 악취가 나는 배추 같다고 하여 'skunk cabbage'라 부릅니다.
꿩의바람꽃, 가는 줄기에 꽃싸개잎에 둘러싸인 하얀 꽃에서 꿩의 모습이 연상되나요? 20여 종이 넘는 바람꽃 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백미(白眉)입니다.햇볕이 좋으면 꽃받침을 벌리고 우아한 자태를 뽑낼 텐데 아쉽네요. 일주일 후면 절정일 듯합니다.
현호색, 서운해 할까 봐 딱 하나가 꽃이 피어 선뵙니다. 점현호색보다는 먼지 피나 봅니다. 한자로 玄胡索이라고 쓰지요. 덩이줄기가 검고, 중국 오랑캐 땅 하북성과 흑룡강성 등 북부지방에 많이 나는데 새싹이 돋아날 때 노끈(매듭) 모양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바람꽃 종류와 마찬가지로 현호색 종류는 큰나무가 잎이 무성하기 전 이른 봄부터 서둘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래야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결실하여 종족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덩이줄기는 피를 맑게 하고 통증을 진정시키는 데 귀중한 한약재로 쓰인답니다.
완전히 핀 꽃보다 빨갛게 맺혀 있는 꽃망울이 더 예쁜 딱총나무입니다. 아직은 너무 일러 별 볼 품이 없지만. 여름철 다 익어서 송알송알 달려 있는 빨간 열매가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새순에서는 누릿한 냄새라 할까 독특한 향이 납니다. 이 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어린 순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 이 독특한 냄새를 어떤 사람은 화약 냄새 같다고 하여 이 나무 이름을 딱총나무라 했다고 합니다.
나무 꽃은 딱 하나, 생강나무를 만났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그 나무입니다. 점순이에게 떠밀펴 부등켜 안긴 채 푹 파묻힌 그 노란동백꽃, 점순이 채취인지, 노란 동백꽃 향기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나는 고만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생강나무가 노란 동백꽃이란 걸 몰랐을 때는 웬 동백꽃이 강원도 산골짜기에 피나 의아해 하였습니다.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만 못할지라도 머릿기름으로 쓴 데서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노란동백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생강나무는 새잎이나 잔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납니다. 은은한 향이 좋아서ㅓ 어린 잎을 따다가 덕어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또한 암수딴그루로 꽃이 피는데 대체로 수그루의 수꽃이 더 화려하고 풍성한데 암그루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강나무는 꽃 피는 시기도 비슷하고 색깔도 노란색이라 산수유 꽃과 비슷합니다. 꽃만 보고서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꽃자루를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꽃자루가 짧은 것은 생강나무이고 꽃자루가 길면 산수유나무입니다.
산괭이눈은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주로 물이 흐르는 계류 근처에 납니다. 조금 더 있으면 흰털괭이눈, 애기괭이눈, 금괭이눈도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릴 것입니다. 머지않아 아래처럼 예쁘게 꽃이 필 것입니다. 아래쪽은 예년에 곱게 핀 것을 천마산 이 자리에서 찍은 것입니다.
-담배풀 종류입니다. 역시 솜털로 단단히 무장하고 겨울을 났습니다.
-단풍고사리삼, 겨울철에 잎이 이렇게 빨갛다고 합니다. 그리고 잎끝이 고사리삼보다 날카로운 편입니다.
-눈도 밝게 꽃동무가 대극과의 개감수를 발견했습니다. 보통 어린 개체는 온통 붉은색인데 붉은 기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까실쑥부쟁이 어린 잎입니다. 작년 꽃이 핀 묵은 대가 남아 있네요.
-미나리과 는쟁이냉이입니다.
-미나리과 나도냉이입니다.
-국화과 멸가치 새싹이 나옵니다.
-사철쑥이 방석처럼 모여 겨울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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