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2) | 銀杏, 공손수(公孫樹)·행자목(杏子木), 압각수(鴨脚樹)(=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명명)
Eun-haeng-na-mu
Ginkgo biloba L.
※속명 'Ginkgo'는 일본명(銀杏, Ginnan)을 'Ginkgo'로 잘못 읽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종소명 'biloba'는 두 개의 배주 모양을 뜻한다.
○ 국명정보
은행나무 :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1937)
○ 국명의 유래
1. "은행 + 나무", 은행나무라는 이름은 한자어 은행목(銀杏木)에서 유래했다. 중간씨껍질이 은처럼 희고 살구를 닮아 붙여졌다. 한반도에 은행나무가 전래된 시기는 밝혀진 바 없으나,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유교가 전래될 때 은행나무도 함께 도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의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하고, 생장이 느려 씨앗을 맺으려면 손자를 볼 만큼 긴 세월이 소요된다는 뜻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불렀다. 참고 : 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 편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2. 열매가 살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 종자를 백자(白子)라고 한다. 참고 : 박상진 <우리 나무 이름 사전>(2019)
○ 분류
은행나무과(Ginkgoacea) 은행나무속(Ginkgo)
은행나무
○ 분포|자생지
중국(저장성 서남부) 원산 | 전국에서 가로수, 공원수로 널리 식재한다.
○ 형태
수형 낙엽 교목이며 높이 60m, 지름 4m 정도까지 자란다.
수피 회색으로 두껍고 코르크질이며 균열이 생긴다.
겨울눈 광택이 나는 반구형이며, 털이 없다.
잎 긴가지에서는 어긋나며 짧은가지 끝에서는 3-5개씩 모여 난다. 부채 모양이고 끝은 흔히 얕게 2갈래로 갈라진다.
구화수 암수딴그루이며 수분기는 4월이다. 생식기는 짧은가지에서 잎이 전개하면서 동시에 성숙한다. 포자수는 길이 1.2-2.2cm의 원주형이며 연한 황록색을 띤다. 암그루의 생식기는 짧은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며, 1-2cm 정도의 자루 끝에 2개의 배주가 달린다.
종자 길이 2.5-3.5cm의 타원형 또는 난형이며 9-10월에 황색으로 익는다. 바깥쪽 육질층(육질외종피)은 익으면 계란 썩는 듯한 악취가 나며, 표면에는 백색 가루가 있다. 딱딱한 중간 껍질(후벽내종피)은 백색이고 2-3개의 능선이 있으며, 그 안쪽의 기름종이 같이 얇은 껍질(내종피)은 연한 적갈색을 띤다.
○ 참고
김진석, 김태영 <한국의 나무>
※열매(핵과) 모양의 종자는 나출된 배주가 발달한 것이므로 열매가 아니라 종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楊平 龍門寺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1962년 12월 7일 대한민국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사의 은행나무'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나이가 약1,100~1,500살로 추정되며 높이 42미터, 밑둥 둘레가 14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은행나무이다. 한편 이 은행나무가 앞으로 200년을 더 산다고 할 때 그 경제적 가치는 약 1조 6,884억원이라고 한다. ▩ 은행나무 기원, 종자와 쓰임새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한반도의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출전: 위키백과 |
○ 여적
초등학교 동창들과 용문사 나들이를 하다 11시 조금 넘어 용문역에 도착하여 호섭이와 같이 남한강 지류 흑천 산책을 하고 11시 반경에 용문역에서 친구들과 합류했다. 용문사 중앙식당에서 1인 19000원짜리 산채 불고기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막걸리, 소주, 맥주 각자의 기호대로 반주를 곁들였다. 나는 지평막걸리 2잔을 먹었다. 어금니가 솥아서 걱정이 됐지만 감자빈때, 파전을 보고서 참지 못하고 마셨다. 어제보다는 상태가 양호해져서 마셨다. 산채, 된장찌개, 불고기가 맛갈스러워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점심 식사후 근술이는 2시 차로 먼저 용문역에 보내고 나머지 일행은 용문사까지 산책을 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구한 승병기념탑이 있다. 관군이 형편 없어서 의병이 나서서 왜구와 싸워 나를 구한 것이다. 용문사 하면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은행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수령 1100년, 수고 42m, 은행을 1년에 350kg 거둔다니 대단하다. 나무는 이렇게 장수하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데 인간은 오래 산다고 하여 어떤 이로움을 남길까. 늙고 병들면 오히려 남에게 짐이 되는 현실이 아닌가? 천년을 넘게 살아서 용문사를 지키는 간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거목을 보려고 용문사를 찾는 사람들이 1년이 수십만 명이 된다. 용문사 아래에 있는 식당이며 여러 기념품 상점 상인들을 먹여 살린다.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 나무처럼 살다가 나무처럼 생을 마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