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 자미수(紫微樹), (목)백일홍, 간지럼나무
Bae-rong-na-mu
Lagerstroemia indica L.
○ 국명정보
배롱나무 :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조선식물향명집>(1937)
○ 국명의 유래
"배롱 + 나무", 배롱나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전래된 한자명 百日紅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백일홍나무가 발음과정에서 배롱나무로 변한 것이다. 원뿔모양꽃차례의 아래부터 차례로 피는 꽃은 붉은색으로 초여름에 시작하여 가을까지 이어지느데 이로부터 백 일 동안 붉다는 뜻으로 백일홍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로 옛 문헌에 ㅂ·ㅣㄱ일홍으로 기록했다.
참고 : 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 편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 분류
부처꽃과(Lythraceae) 배롱나무속(Lagerstroemia)
배롱나무 / 흰배롱나무
○ 분포|자생지
중국 | 중부 이남에서 도로가, 공원,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어 기른다.
○ 형태
수형 낙엽 소교목이며 높이 3-5(~7)m, 지름 30cm 정도로 자란다.
수피 연한 홍자색이고 얇게 벗겨지며 오래되면 노각나무처럼 불규칙하게 조각으로 떨어진다.
어린가지 회갈색이고 털이 없으며, 네모로 각지고, 좁은 날개가 있다.
겨울눈 길이 2-3mm의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며, 인편은 적갈색이다.
잎 주로 어긋나며 길이 2.5-7cm의 도란상 장타원형-아원형이다. 끝은 둥글거나 둔하고 밑부분은 넓은 쐐기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엽질은 다소 가죽질이며 양면에 털이 없다.
꽃 7-9(~10)월에 길이 7-20cm의 원추꽃차례에서 홍색이나 분홍색, 또는 백색의 양성화가 모여 달린다. 꽃잎은 6개로 주걱 모양이며, 상부는 아원형으로 주름지고 하부는 가늘고 길다. 수술은 36-42개인데 유난히 긴 가장자리의 수술 6개는 안쪽으로 굽는다.
열매 삭과, 길이 7mm 정도의 구형이고, 10-11월에 익으며 6갈래로 갈라진다. 종자는 길이 4-5mm이고 넓은 날개가 있다.
○ 동정 포인트
1.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부처꽃과(Lythraceae) 식물들에 비해서 풀이 아니라 나무이며, 수술은 30-40개로서 많고, 씨는 날개가 있으므로 구분된다.
○ 참고
김진석, 김태영 <한국의 나무>
※잎이 특이하게 두 장씩 어긋나서 달리기도 한다.
○ 여적
▩ [유레카] 자미꽃 / 김지석(한겨레, 2014. 08. 25.) ‘열흘 붉은 꽃이 없다’(화무십일홍)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꽃도 여럿 있다. 긴 여름을 넘어 가을까지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배롱나무와 능소화 꽃이 대표적이다. 둘 다 은근히 화려하다. 두 나무의 위상은 자미(紫微)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능소화는 자미꽃, 배롱나무는 자미수로 불렸다. 자미궁은 천제(天帝)가 머무는 곳으로, 북두칠성이 그 주위에 배치돼 있다. 세계의 중심이 자미인 것이다.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는 핵심 권력기관인 중서성·한림원을 자미성이라고 했으며, 이곳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배롱나무꽃은 끝없이 배출되는 인재를 뜻하기도 한다. 배롱나무(백일홍나무)의 붉은 꽃은 일편단심을 상징한다. 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성삼문은 이 꽃을 좋아해 ‘백일홍’이라는 시를 남겼다. 그러나 배롱나무의 꽃이 진 뒤에는 매끄럽고 앙상한 줄기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곧 모든 것을 미련없이 내준 무소유 상태가 된다. 절에서 배롱나무를 즐겨 심는 까닭이다. 배롱나무는 줄기의 한 부분을 간질이면 작은 가지들이 웃음을 참는 듯 흔들린다는 뜻에서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능소화 꽃은 금등화라고도 한다. 실제로 능소화와 등나무는 줄기 모양이 비슷하지만 보라색인 등나무 꽃보다 주홍빛의 능소화 꽃이 더 세련돼 보인다. 능소화는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덩굴식물이어서 혼자 자라지는 못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에 이런 대목이 있다. ‘능소화여/ 그 잎이 푸르고 푸르도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았으리’ 쇠퇴기 주나라에서 큰 기근이 닥친 시기가 이 시의 배경이다. 능소화가 다른 나무나 담장 등에 붙어 자신의 모습을 뽐낼 수는 있으나 나라가 언젠가 무너지듯이 무한정 갈 수는 없다는 탄식이다. ‘자미’에는 이룰 수 없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