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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나의 "풀꽃나무광" 이야기

by 풀꽃나무광 2020. 11. 14.

아하, 이게 바로 고사리삼이로구나!

 

나는 시간이 나면 줄곧 교정을 거닐곤 한다. 살아 있는 풀꽃나무들에 눈길을 주면서 하나하나 인사를 한다. 이젠 어디에 가면 무슨 풀꽃과 무슨 나무가 있는지 웬만한 것은 훤히 알고 있다. 그러다가 혹 전에 보지 못한 녀석이 얼굴을 내밀면 그 즉시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른다. 집에 가자마자 컴퓨터 모니터에 올려놓고 식물도감에서 이름을 찾는다. 이 녀석이 속할 만한 과로 찾아가서 꼼꼼히 살펴보면 용케 찾아내기도 하지만 그러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러면 동호인들의 광장에 내다 놓고 자문을 구한다. 아마추어 도사들이 많아서 대개는 그의 이름을 알아낸다. 그 즉시 나는 정리하여 내 『풀꽃나무광』의 제 자리에 모셔 놓는다. 이렇게 내 집에 초대한 녀석이 이제 900여 종이나 된다.

 

그림 1) [고사리삼과] 고사리삼

 

10월 30일 오후로 기억된다. 우리학교 후정으로 돌아가는 왼쪽 모퉁이 초입에는 대추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종지나물(미국제비꽃)이 있다. 바로 그 앞쪽 그러니까 후관동 뒤꼍 왼쪽 화단을 유심히 살피고 지나다가 나는 백제의 왕릉에서 발견된 금관 장식을 연상케 하는 녀석을 만났다. 순간 “아하! 이게 바로 그 고사리삼 포자낭이로구나!” 라고 직감하고 교무실로 달려가 카메라를 가져왔다. 키가 작기 때문에 양복 버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에 납작 엎드려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조리개 우선 모드, 클로즈업 모드, 프로그램 모드로 번갈아 가면서 초점을 맞춰 각각 대여섯 번씩 셔터를 눌렀다.

 

정확히 작년 11월 13일에 나는 우리학교 이 근처에서 이 녀석의 잎사귀만 처음 봤다. 뭘까 궁금하여 카메라에 담아다가 집에 와서 모니터에 올려놓고 도감을 열심히 찾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의 홈피 스승이신 『들꽃누리집』의 주인장 주준호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어 알아보았다. 그러나 주 선생님께서도 잘 모르겠다고 손님 사진방에 올려놓아 아는 사람이 나타나 주길 기다려야 했다. 며칠을 기다려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산 정현도 선생님이 열어 놓은 『꽃지기의꽃누리』에 올렸더니 즉각 응답이 왔다. 양치식물 고사리삼과의 여러해살이풀 고사리삼이라고. 그리고 포자낭까지 있는 고사리삼을 함께 올려 주었다. 비로소 내가 궁금해하던 한 가지 식물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포자낭까지 있는 실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년을 기약하겠다고 응답을 보냈다. 그 녀석이 나와의 기약을 능히 지켜 오늘 이렇게 백제의 왕 금관장식을 연상케 하는 포자낭의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자연수생식물원, 우리 동네 ‘연방죽

 

나는 우리나라 전형적인 면 단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우리 마을 조금 떨어져서는 마치 배의 형국과 흡사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야트막한 배메산과 누역(도롱이)의 형국과 흡사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작달막한 누역메산이 좌우로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보면 이 두 산이 마치 우리 동네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 동네 바로 뒤로는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가 우거진 야산이 빙 둘러 있다. 동네 바로 앞에는 우리 학교 운동장 크기의 너댓 배쯤 되는 방죽(늪)이 있는데, 예로부터 연이 많이 서식한다 하여 연방죽이라고 불렀다. 이 방죽은 글자 그대로 자연수생식물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식물상이 다양했다. 이 방죽의 제방은 자동차가 다니는 한길이었는데 길 양쪽으로는 30m가 넘는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빽빽이 도열해 있어 먼데서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제방 안쪽 물가에는 푸른 칼날처럼 곧게 뻗는 천남성과의 창포가 많이 나 있었다. 방죽 안에는 당시에는 이름도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연꽃, 수련, 가시연꽃, 노랑어리연꽃과 마름, 물옥잠, 가래, 보풀과 줄, 부들 등이 많아 여름엔 물 속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생식물들이 많았다. 식물뿐만이 아니었다. 붕어, 잉어는 말할 것 없고 메기, 가물치, 뱀장어, 버들치와 참게, 말조개, 우렁이 등이 많아 조금 과장하면 물 반 고기 반이랄 정도로 다양한 종이 서식하는 담수어 수족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 동네 바로 앞에 이 연방죽이 있다는 것은 나에겐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사계절에 따라 이 방죽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추억들이 다양하게 많아 며칠을 두고 이야기하여도 못 다할 정도다. 내가 생물에 관심이 많은 것도 다 이 방죽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2) [용담과] 노랑어리연꽃

 

 

아이들의 디지털카메라, 제자들의 책 선물

 

작년 여름방학 때였다. 배낭여행을 나간 막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선물로 디카를 하나 사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녹녹치 않아서 망설였더니 아내가 적극 권유를 하여 허락하였다. 생물에 관심이 있어 야생화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 구경하며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아내와 나누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곁에서 들은 모양이다. 아이들이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고 내심 기쁘기도 했다.

 

이 학교에 오기 전 무학여고에 근무할 때였다. 스승의 날 즈음해서 면목고 제자들이 찾아왔다. 선물이라며 책을 몇 권 내놓는다. 김태정의 3권짜리 핸드북《쉽게 찾는 우리꽃》과 송홍선의《풀꽃나무타령》 책이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생물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국어 선생이 됐다는 것, 은퇴하면 우리나라 산과 들을 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생물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정리하고 싶다고.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이런 선물을 사오다니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웠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계절에 따라 늘 가방 속에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식물을 만나면 유심히 관찰했다가 책을 꺼내 놓고 확인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본 우리 아이들은 선물로 디지털카메라를 살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나는 면 단위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물상과 생물 과목이 있었는데, 나는 유독 생물 시간이 참 재미있었다. 색맹이 유전한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고, 은행나무가 암수딴몸이며, 침엽수가 아니라 부채꼴의 활엽수이지만 겉씨식물이며, 살아 있는 화석이랄 정도로 오랜 역사가 있다는 것도 이때 배웠다. 나는 9km가 넘는 거리를 날마다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를 오고가는 논길, 밭길, 산길 한길가에 있는 생물들을 항상 대하면서 다녀서인지 그때엔 이름은 잘 몰랐지만 안면이 있기 때문에 지금 도감을 보면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온다.

 

그렇게도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청 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했다. 과학 교과목 중에는 화학, 물리, 생물 과목이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역시 생물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매달 대입 본고사에 해당하는 과목만 실력고사를 치렀다. 모교에서는 학교 강당 앞 벽 높이 성적 우수자 명단을 써서 방을 붙였다. 나는 학년 전체에서 생물 과목 톱을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실력도 붙었다. 나는 꼭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색약이라서 이미 쓴맛을 봤는데, 또 내가 하고 싶은 전공도 할 수 없게 되다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색맹이 있거나 색약이라도 이공계며 자연 계열을 응시할 자격조차 없었다. 생물 선생님께 찾아가서 꼭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은데 적록색약이라는 것과, 달리 어떤 방도가 없겠느냐고 여쭤 봤다. 선생님께서는 제도가 그러하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하신다. 색맹을 검사하는 책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서라도 생물학과를 가고 싶어서 체육과에 찾아가서 책이 몇 종류나 되는 지도 알아보았다. 일본에서 나온 책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느 책으로 검사를 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맥없이 발길을 돌렸다.

 

나는 초․중학교 우리 동네 선배의 권유로 처음엔 공고에 진학하려 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리라 기대하고 발표 날에 가 봤더니 낙방을 한 것이다. 교무실까지 찾아가서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적록색약이라서 불합격했단다. 운전기사가 색맹이라면 빨강과 초록색 신호등도 분간하지 못하여 엄청난 사고도 유발할 수 있다고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불합격한 사유를 설명해 주었던 것도 나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더욱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실력이 부족하여 떨어진 줄 알지 색약이라서 떨어졌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집안 형편도 넉넉지 못한데 잘 되었다 생각하고 농사꾼 후계자로 만들 작정을 하고 논으로 밭으로 끌고 다니며 농사일을 시켰다. 체구도 작고 힘도 없는데다가 일이 몸에 배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설펐겠는가? 하는 일마다 꾸중을 들으니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더라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동네 한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아 추석을 쇠고 집을 떠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는 일 외엔 오로지 공부만 하였다. 내가 절실히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삼수를 하여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적록색약이란 유산 덕분에 나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생물학과를 가지는 못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신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국어교육과에 들어가 나는 지금 이렇게 국어 선생 같지 않은 국어 선생을 하고 있다.

 

못 이룬 꿈을 보상하기 위하여

 

그림 3) [양귀비과] 애기똥풀

 

나는 2002년 8월 25일을 잊지 않는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꽃이 피어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찍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산골짜기에 있는 요양원인 ‘희망의집’에 봉사하러 갔다가 거기서 물봉선, 애기똥풀, 닭의장풀, 익모초, 칡, 어수리, 사위질빵 등을 처음 촬영했다. 수동 필카에 대해서조차 젬병인데다가 외국어로 되어 있는 설명서를 해독하기가 어려워 우선 오토 모드로 찍기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니 마음에 차지 않았으나 담아온 것을 날짜별로 방을 만들어 컴퓨터에 저장해 나갔다. 처음엔 꽃이 핀 것을 주로 찍었는데 꽃만 가지고는 무슨 식물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아서 잎이며, 줄기까지 찍기 시작했다. 미나리과나 미나리아재비과는 꽃만 가지고는 식별하기가 참 어렵다. 당근이나 당귀의 꽃처럼 피는 산형꽃차례인 궁궁이, 구릿대, 개구릿대, 누룩치, 어수리, 개사상자, 기름나물, 바디나물 등과 같은 식물은 지금도 확연한 식별이 어려워 숙제로 남아 있다. 허긴 나보다 몇 년씩이나 선배인 사람들조차 미나리과의 산형꽃차례 식물을 올리면 묻지 말라고 고개를 살래살래 내두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채집을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식물 채집한다는 심정으로 시작을 했는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 지 생각이 되질 않았다. 여기 저기 야생화 사이트에 들어가다 보니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들꽃누리집』이란 곳이 내가 생각한 것과 뜻이 같은 집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국민의 정보화를 위해 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하는 학원이 학교 앞에 있는데 수강을 하려면 해 보라고 교육정보부에서 알려 왔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등록을 하여 2달 과정으로 홈페이지 제작을 위한 기초 과정을 공부했다. 용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태그를 배우고, 포토샵을 배우고, 나모를 배웠다. 선행 예비 지식이 없는지라 수강생 중에서도 제일 잘 알아듣지 못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겨울방학 동안 둔촌초교에 가서 다시 포토샵 과정을 더 복습했다. 연수에서 배운 대로 잘 안 되어 집에 와서 아들한테 물어 보면 설명을 해 주어도 빨리 이해하지 못한다고 힐책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아내는 아내대로 그렇지 않아도 눈이 좋지 않은데 마저 다른 쪽 눈까지 망칠 작정이냐고 성화다.

 

『풀·꾳·나무광』을 드디어 열어

 

2002년 12월 22일, 악전고투 끝에 땅위가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 드디어 내 집 한 채를 지었다. ‘컴내꺼’에 무료 도메인 http://leehogyun.com.ne.kr/란 이름으로 홈피를 등록하고 『풀·꾳·나무광』이라고 이름하였다. ‘광’은 초기 한글학회 학자들이 우리말의 ‘사전’을 ‘말광’라고 한데서 따왔다. 어떤 분은 ‘미치다’의 뜻인 ‘狂’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는데 어찌 보면 늙바탕에 바람이 나서 미쳤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사이버 공간에 감히 식물도감을 만들어볼 작정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풀꽃나무에 미치다시피 된 것이다.

 

나는 항상 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풀, 꽃, 나무, 버섯까지 보는 대로 카메라에 담아다가 파일명에 찍은 날짜와 이름을 넣어 컴퓨터에 저장하였다. 최고의 화질에 최고의 크기로 찍으면 사진 한 장이 무려 1.3메가바이트를 넘는 관계로 할당된 공간에 그대로 올리면 50장도 채 올리지 못해서 다 차 버린다. 포토샵에서 크기와 화소를 낮춰서 웹용으로 다시 저장하여 올려야 한다. 이 파일들을 식물 하나 하나에 안내하는 명찰을 달았고, 다시 이름순, 꽃 색깔, 찍은 장소별로 분류하고 여기에 그 식물에 얽힌 일화까지 곁들였다. 이 작업을 해 나가는데 장난이 아니게 시간 많이 걸린다. 5월도 지나지 않아서 나에게 계정된 공간이 다 차 버렸다. 2만원을 주고 50메가를 더 구입하였지만 6월이 다 가기 전에 다시 100메가가 넘어 버렸다. 컴내꺼 회사 방침에 한 사람 당 더 이상은 천금을 주어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나의 홈 모델이 되고 안내자이신 주 선생님의 안내로 하는 수 없이 아들 이름으로 또 다른 홈을 계정하고 편법으로 내 홈에 링크하여 쓰고 있다. 현재는 150메가도 모자라서 200메가 째 쓰고 있다.

 

나는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내와 동반하여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있는 산에 등산 겸 촬영하러 나간다. 아직까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적이 없는 녀석이 나타나면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을 한다. 그럴 때면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초점이 잘 맞아 사진이 선명하게 나와야 할 텐데 하는 염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 홈에 새로운 식구를 맞아들인다는 반가움에 더 그러하다. 아직은 야생화 하나하나의 매력에 빠질 만큼은 안 되었어도 잎도 꽃도 제각기 다른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저마다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쇠귀에 경 읽기이지만 아내에게 ‘이건 으아리, 저건 청미래덩굴’ 하고 가르쳐 주면서 산에 오르다 보면 전혀 힘드는 줄 모르고 어느 새 정상까지 다 오르게 된다. 이렇게 한 주 한 주를 보내다 보면 정말이지 한 달이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다.

 

우리 학교에 야생화 탐사 동호인회를 처음으로 만들어 한택식물원과 천리포 식물원, 평창 한국자생식물원에도 갔다 왔지만, 아내와 함께 나가서 단 한 가지일지라도 내가 모르는 손님을 모셔오는 기쁨과는 비할 바 아니다. 식물원에 가면 힘 안 들이고 쉽게 한꺼번에 많은 식물을 만나게 되지만 소화가 잘 안 되어서인지 내 지식이 되지 않고 언제 대면을 했는지 조차 감감할 경우가 있다. 앞으로는 박물관처럼 진열되어 있는 식물원에는 가고 싶지 않다.

 

접사 기능이 뛰어난 니콘 쿨픽스를 새로 마련

 

나는 한국어판 사용 설명서를 구해서 하나하나 정독을 해 가면서 시험 촬영을 해 보았다. 꽃이 웬만큼 큰 녀석이야 오토 모드로 찍어도 구도만 잘 잡으면 문제가 없었지만 냉이, 꽃다지, 벼룩이자리, 개미자리, 별꽃, 꽃마리 등과 같은 아주 작은 꽃을 접사 모드로 찍는 데는 문제가 생겼다. 줌을 이용하여 매크로로 하면 초점이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찍어 놓고 보면 선명하지가 않은 것이다. 내가 가진 캐논 카메라는 색감을 천연색에 제일 가깝게 나오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접사 거리의 한계가 20cm밖에 안 된다. 서툰 목수 연장 탓만 한다고 내 기술이 부족한 데도 문제가 있겠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접사 기능이 좋은 카메라를 하나 갖고 싶었다. 꽃님들의 사진을 보면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기막힌 것이 많은데 주로 니콘 아니면 소니 제품을 쓴다고 한다.

 

그림 4) [국화과] 개망초

 

아이들은 이왕 사려면 하루라도 빨리 사라고 하는데, 아내는 취미 삼아 하는 것 대충 하면 되지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한다. 나는 결단을 내려 여름방학이 끝나고 큰아이를 대동하여 남대문 디카 시장에 갔다. 니콘 쿨픽스 5700은 현재로서는 최상급 기종인데 부속물까지 하면 100만원을 넘게 줘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한 급 아래인 4500을 거금을 주고 삼각대까지 샀다. 중랑천에 나가 시험 촬영까지 해 봤다. 배롱나무, 맥문동, 애기똥풀, 개망초, 부추, 당근 등과 같이 꽃이 아주 작은 것도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나왔다. 학교에까지 가져와서 캐논 카메라로는 잘 찍히지 않았던 아주 작은 쥐꼬리망초, 들깨풀, 장구채 등을 찍어 봤더니 고수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괜찮았다.

 

내 홈피『풀·꾳·나무광』은 아직 엉성한 데가 많아 우리학교 교지에 이런 글을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손이 미처 가지 않은 것을 재정리할 작정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계속하여 잘못된 곳이 있으면 바로 잡고 미흡한 것은 깁고 채워나가려 한다. 겨울방학이 기다려진다. 온갖 식물들이 소생하는 내년 봄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