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죽나무(1) | 참중나무/충나무, 쭉나무
Cham-juk-na-mu
Cedrela sinensis A. Juss. | Toona sinensis (Juss.) Roem.
○ 국명정보
참죽나무 : 조선식물명집 (정태현, 도봉섭, 심학진, 1949)
참중나무 :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조선식물향명집>(1937)
충나무 : 조선식물향명집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1937)
쭉나무 : 조선삼림식물도설 (정태현, 1942)
○ 국명의 유래
1. "참 + 죽나무" 채식을 하는 스님들은 참죽나무의 새잎으로 나물이나 장아찌를 만들어 반찬으로 즐겨 먹는다. 때문에 '진짜 중나무'란 뜻의 진승목(眞僧木)이라고 쓰고 참중나무라고 부르다가 그 이름이 변하여 참죽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잎이참죽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먹을 수 없는 가죽나무의 이름은 가승목(假僧木)에서 온 것이다. 참고 : 박상진 <우리 나무 이름 사전>(2019)
2. <사성통해>나 <훈몽자회>의 기록에 의하면 '튱나모'였다. 이후 '튱나모>쥭나모>쥭나무(중나무)>죽나무'로 발음이 변했다. 참죽나무를 진승목이라고 기록한 것은 19세기 차자에 의한 표기로 이해되므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후 가죽나무가 들어옴으로써 이와 대비시켜 참을 앞에 덧붙여 참죽나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 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 편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 분류
멀구슬나무과(Meliaceae) 참죽나무속(Cedrela)
참죽나무
○ 분포|자생지
중국(산둥반도 이남), 동남아시아, 네팔, 부탄, 인도 원산 | 전국의 민가 및 경작지 주변에 식재한다.
○ 형태
수형 낙엽 교목이며 높이 20m 정도로 자란다.
수피 암갈색이며 세로로 불규칙하게 벗겨진다.
겨울눈 길이 6-8mm의 광난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잎 어긋나며 10-22개의 작은잎으로 이루어진 우상복엽이다. 작은잎은 길이 8-15cm의 피침형-장타원형이며, 끝이 길게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얕은 톱니가 성글게 있거나 밋밋하다. 뒷면은 맥 위와 겨드랑에 갈색 털이 있다.
꽃 암수한그루이며 6월에 40(~100)cm의 원추꽃차례에 백색의 꽃이 모여 달린다. 꽃은 길이 3.5-4.5mm이며, 꽃받침열편과 꽃잎은 각각 5개다. 꽃잎은 길이 2.8-4.2mm의 삼각상 난셩이며 곷받침열편보다 길다. 실 모양의 헛수술은 (1~)5개이다. 수꽃의 수술대는 길이가 1.3-1.8mm(암꽃의 수술대는 길이 1-1.5mm)이다. 암꽃의 화반은 황색이며 자방은 지름 1.6-2.3mm이고 털이 없다. 암술대는 길이 0.5-0.8mm(수꽃의 암술대는 1.1-1.5mm)이다.
열매 삭과, 길이 1.5-3cm의 도란상 원형이며 5갈래로 갈라진다. 10-11월에 익는다.
○ 동정 포인트
1. 가죽나무에 비해 작은잎의 아래쪽에 돌기 같은 선점이 없다.
○ 참고
김진석, 김태영 <한국의 나무>
※멀구슬나무과 식물 중에서 내한성이 가장 강한 수종으로 유럽(북부)의 여러 나라에서 가로수 및 공원수로 식재하고 있다. 새순은 장찌를 담그거나 부각의 식재료로 이용하는데 경상도에서는 이를 가죽장아치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소태나무과의 가죽나무와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 여적
참죽나무 이야기(1)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47
참죽나무 이야기(2)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37
참죽나무 이야기 참죽나무, 우린 어릴 때 이것을 그냥 쭝나무라고 했다. 아마도 '죽나무'엿던 것이 '죽'의 첫소리가 경음화되고, '죽'의 끝소리 'ㄱ'이 뒤에 오는 첫소리 'ㄴ'에 동화되어 'ㅇ[ŋ]'으로 변해 '쭝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서울에는 살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 이 쭝나무가 참죽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참을 덧붙여 참죽나무라고 했을까? 아마도 비슷한 나무 중에 가죽나무가 있으니 이에 대척되게 참죽나무라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얼핏 보면 참죽나무나 가죽나무는 둘 다 여러 잎 모양이 비슷해서 식물에 관심이 있어 좀 안다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가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 둘은 여러 장의 잎이 깃 모양으로 달린 겹잎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나무는 족보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중학교 친구들과 광주 남종면 분원리 쪽에 갔다. 싱싱한 토마토도 살 겸 가까운 분원초등학교 뒷산 산행도 하려고 몇 해 전부터 이맘때 오곤하였다. 쉬엄쉬엄 올라갔다가 다 내려와 분원리 삼거리 즈음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귀한 나무, 그것도 꽃이 활짝 핀 참죽나무를 만났다. 좁쌀좁쌀 한 작은 꽃은 벌써 일부가 떨어져 길바닥이 하얗다. 그러나 가지 끝마다 원추화서로 핀 꽃이 하도 풍성하여 고개를 꼿꼿이 들지 못하고 아래로 드리워질 정도로 개화 절정을 이루고 있다. 꽃은 너무 작아서 하나하나 보면 별 볼품이 없다. 하지만 화서 전체를 보면 풍성하기 이를데 없다. 꽃이 이렇게 제대로 핀 참죽나무를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카메라를 가져오긴 했지만 쿨픽스 컴팩트라고 그냥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꽃을 중심으로 잎과 수피. 나무 전체를 여러 장 찍었다.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꽃을 더 가깝게 정확히 담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 쭝나무 하면 나에겐 여러 가지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집과 집의 경계를 이루는 울타리나 담장에 으레 이 참죽나무를 심어 길렀다. 이 나무는 곧게 높이 자라는 나무이다. 자랄 때 가지치기만 제때 해 주면 무려 20m 이상 곧게 하늘 높이 자란다. 그래서 때까치란 녀석이 이 높은 나무 끝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친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따따따--'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계한다. 우리는 짖궂게 그냥 놓아 두지 않고 동무들 중 나무를 잘 타는 녀석이 기어이 끝까지 올라가서 이소 직전의 때까치 새끼를 둥지째 가지고 나려왔다. 집에다 가져다 놓고 길러볼 속셈이지만 새끼는 십중팔구는 죽이게 된다. 잠자리, 메뚜기, 방아개비 등 열심히 잡아다가 손짓을 하며 먹이지만 제 어미가 물어다 주는 것과 같을 수 없으니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여러 가지 쓸모가 많다. 새잎이 돋아날 때쯤이면 긴 장대 끝에 낫을 달아 전지를 해서 새잎을 따 여러 가지 나물을 해먹었다. 잎를 데쳐 말려 두었다가 참죽나물로도 먹고, 된장,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장아찌로도 먹고, 물에 푼 쌀가루를 발라 말렸다가 튀겨 부각도 만들어 먹었다. 사람들은 참죽나무 잎의 말로썬 설명하기 어려운 그 독특한 향을 즐겼던 것이다. 또한 목재를 아주 요긴하게 여러 가지로 이용하였다. 목질이 붉고, 단단하여 여러 가지 가구재로 이용하였다. 오늘날처럼 플라스틱이 일반화하여 용기로 이용되기 전에는 이 참죽나무를 이용하여 용기를 만들어 썼다. 우리집 부엌에서 참죽나무로 만든 설겆이통을 썼다. 옹기로 만든 설겆이통에 사기그릇이나 뚝배기 같은 그릇을 담아서 설겆이를 한다면 자칫 서로 부딪혀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것이다. 참죽나무를 적당한 길이와 너비로 켜서 조각조각 이어붙여 대나무로 태를 메어 통을 만들어 썼다. 설겆이통뿐만 아니라 이 참죽나무로 똥장군이라는 분뇨통도 만들어 썼다. 옹기나 오지로 만든 것보다 가볍고 깨질 염려가 없고 오래오래 두고 쓸 수 있으니 참죽나무로 만든 똥장군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또 나는 참죽나무 하면 얼레가 생각난다. 어릴 적 겨울이 되면 연날리는 재미가 쏠쏠하여 아이들은 즐겨 연날리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연을 날릴 때 실을 감았다 풀었다 쉽게 할 수 있는 연자세, 곧 얼레가 없었다. 그래서 몰래 바느질 상자에 들어 있은 실패를 가져다가 연을 날렸다. 방패연을 날릴 때는 실을 풀기도 하고 감기도 하면서 연으로 재주도 부리면서 날려야 재미가 있는데 얼레가 없으니 그게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우리 어릴 때는 시중에 얼레를 파는 데가 있을 수 없다. 아버지를 졸라서 얼레를 가져 보는 게 소원이라고 졸라댔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이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분 목수를 집으로 모셔다가 얼레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나는 아저씨가 얼레를 만드는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지켜 보았다. 아버지는 마루 밑에 간직해 두었던 오래된 참죽나무 통나무를 꺼내 놓았다. 아저씨는 톱으로 얼레 만들 만한 적당한 길이로 짤라내었다. 다시 그걸 자귀로 몇 개의 적당한 크기의 조각으로 쪼개는데 신통하게도 바르게 짝짝 조개졌다. 반듯하게 쪼개진 조각들의 붉은색 나무결이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고왔다. 그걸 다시 자귀로 다듬고, 부분부분 대패로 매끈하게 밀고 정으로 홈을 파고 구멍을 뚫는다. 설계도도 없이 부분부분다듬은 것을 가져다가 아퀴를 맞추니 얼레가 되었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얼레를 만든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통나무를 잘라서 설계도도 없이 못도 쓰지 않고 얼레를 만든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봐도 목수 아저씨의 솜씨는 참으로 대단했다. 멀구슬나무과에 속하는 참죽나무는 학명으로 "Cedrela sinensis A. Juss."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고유종이 아니다.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중국명은 '香椿(향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한자로 '椿(춘)'이라 쓰는데 이를 신령스런 나무로 여기고, '춘(椿)'을 장수의 비유로 썼다. 상고시대에 대춘(大椿)이란 사람이 만년 이상을 살았다는 장자(莊子)의 우언(寓言)에 연유한다. 大椿之壽(대춘지수)를 줄인 말인 椿壽(춘수)는 '참죽나무처럼 많은 나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는 일, 즉 長壽(장수)를 달리 부르는 말이 되었다. 또한 靈椿(영춘), 곧 신령스러운 참죽나무라고도 하는 大椿은 아버지를 비겨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椿壽는 그래서 아버지가 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도 된다. 또한 남의 아버지를 높여 椿堂, 椿府, 椿府丈 등으로 쓰기도 하는데 장자의 대춘지수에 기인한다. 전국적으로 퍼져 자라는 가죽나무는 잎 모양이 참죽나무와 비슷하지만 족보가 전혀 다른 소태나무과에 속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 고유종은 아니고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다. 학명은 "Ailanthus altissima (Mill.) Swingle" 이고, 중국에서는 취춘(臭椿)이라 하였다. 아마도 중국에서도 이 나무가 겉으로 참죽나와 비슷해서 같은 '춘(椿)'을 쓰지만 향이 달라서 '香椿(향춘)'과 구분하여 취춘(臭椿)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다 싶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가죽나무를 '저(樗)'로 썼다. 참죽나무에 비해 별 쓸모가 없어서일까 쓸모없는 물건을 나타낼 때 가죽나무 저(樗)자를 써서 樗散(저산)이라 했다. 참죽나무는 봄에 새로 나온 순으로 나물로 먹었는데 가죽나무는 먹지 못하니 가짜 죽나무이다. 그래서 거짓 가(假)를 써서 가죽나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